고인돌(괸돌)은 양구 동면 지석리의 동리 이름이다.
6.25전까지 커다란 고인돌이 있어서 생긴 이름인데 6.25때 군인들이 폭파시켜 사라졌다고 한다.
예전에는 선사 유적 지도에 고인돌이 있는 것으로 나오기도 했고, 고인돌이 사라진 줄 모르고 답사를 온 사람들도 있었다고 한다.
내가 지석리에 살았던 기간은 초등학교 5학년때부터 중학교 2학년 사이인('60년 4월 - '63년 4월) 3년간이었다.
춘천이 배출한 뛰어난 문인 김유정은 학교에 들어가기 전 어려서 살았던 마을에 20대때 1년 반을 살면서 고향인 증리 마을의 민초들을 소재로 하여 명작들을 낳았다.
나는 김유정 선생의 그림자에도 미치지 못하지만 앞으로 지석리에서 살았던 이웃들에 대한 이야기를 써보고자 한다.
어린 소년의 눈에 비친 것을 썼기에 기억이 단편적인 경우도 있고 부정확한 경우도 있겠지만 '60년대 초바늘 살았던 분들의 이야기를 반세기 가까운 세월이 지난 오늘 반추하여 봄으로 당시이 삶의 모습을 부분적으로나마 재구성하고 우리들의 소년시절의 공유된 기억을 되살릴 수 있는 계기가 되었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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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석리는 양구읍에서 승용차로 20분 정도가 걸리는 곳이지만 당시에는 버스로 1시간 가량 걸리던 곳이었다.
강원도의 대부분 지역이 그렇듯이 지석리 역시 산골로 양구읍에서 서천이라는 하천을 따라 남면과 연속이 되고, 위로는 동면 돌산령(지금 해안 넘어가는 고개)에 이르는 길다란 골짜기에 자리잡은 마을이다.
고인돌 마을은 뒤에 산을 끼고 앞으로는 좁은벌판이 있어 논이 펼쳐져 있고, 벌판이 끝나는 곳에 개울이 흐르며 개울 건너에는 산이 있는 배산임수형의 평범한 마을로 당시에는 약 30호 정도가 살고 있었다.
수복지구라 각지에서 몰려온 사람들이 섞여 사는 양구읍이나 군부대 앞의 마을과는 달리 고인돌 마을은 비교적 토박이들이 많았고 대부분이 농사를 짓고 있었고, 이들을 중심으로 군인가족이 몇가정, 공사판을 따라 왔다가 주저 앉은 떠돌이 가정과 군에서 제대하고 눌러 앉아 사는 집과 부잣집에서 머슴을 사는 사람 등이 섞여서 사는 마을이었다.
내가 반세기 가까이 지난 지금 고인돌 마을 사람들의 이야기를 쓸 수 있는 것은 어머니의 덕분이다.
당시 우리집은 할머니를 모시고 살았는 데 할머니와 어머니는 고부간의 사이가 좋으신 편이었다.
어머니는 할머니에게 마을에서 일어나는 재미있는 일들이나 일상의 소소한 일들을 말씀 드렸고, 지금과는 다른 당시의 가옥구조때문에 나는 싫으나 좋으나 어머니가 할머니에게 하시는 말씀을 들을 수밖에 없었고
또, 동리 아줌마들이 우리집에 모여 들어 수다를 떠는 소리도 웃방에서 들을 수밖에 없었는 데
이것들이 내 기억의 창고 속에 쌓여서 잠을 자고 있다가 지금 먼지를 털고 밖으로 나오게 된 것이다.
서론이 길어졌는 데 이제부터 한가지씩 이야기를 써보기로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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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남하사네 처제
남하사는 고인돌 마을에서 얼마 떨어지지 않은 원당리에 있는 연대 의무대에 근무하는 군인이었다.
바로 아래 여동생이 불쏘시개로 부엌 한구석에 모아둔 화약더미에 성냥불을 던졌다가 화약의 불길이 일면서 얼굴에 화상을 입었을 때 부대에서 좋은 화상약을 가져다 치료하여 주어 얼굴에 상처가 남지 않고 완치되도록 하여준 은인이기도 하다.
남하사는 전라도 사람으로 얼굴이 둥글넙적하게 생긴 부인과 열일곱살과 열살(초등학교 3학년) 쯤 되는 두 처제와 함께 살고 있었다. 아마 처가집이 어려워서 두 처제를 데리고 있었을 것이다.
하루는 마을에 여자 역술인이 찾아왔다.
마을 아주머니들이 모여 왔고, 역술인 아주머니는 원하는 사람들 운세를 보아 주었다.
남하사의 부인을 보더니 몇달 후 아들을 낳을 것이라고 했다. 몇달후 남하사의 부인은 정말 아들을 낳았다.
고인돌 마을에 임씨라는 분 일가가 횡성에서 이주하여 왔다.
임씨는 마을리에 가게를 열었다. 전에는 우리가 가게를 조그맣게 했는 데 30여호밖에 안되는 작은 마을의 주민과 가까운 거리에 주둔하고 있는 탄약고(부대 인원이 2개 분대 정도로 중사가 대장이었다) 부대원이 고객의 전부인데 두개의 가게가 운영될 수는 없고 임씨네 가게 때문에 우리 가게는 도산(?)을 하고 문을 닫았다.
임씨는 30대 초반쯤 되는 나이로 다섯살 쯤 되는 딸을 하나 데리고 있는 홀애비로 애꾸눈의 험상궂게 생긴 어머니와 같이 살고 있었다.
들리는 소문에 의하면 그 할머니가 지독한 시어머니로 며느리를 여럿 내쫓았다고 한다.
그런데 열일곱의 남하사네 처제가 임씨에게 시집을 갔다.
결혼식도 없었고 이웃에 있는 임씨네 집으로 들어가서 살았다고 하는 것이 맞을 것이다.
아마 남하사네 집 사정으로 결혼식을 시켜 줄 사정도 되지 못했을 것이다.
누가 중매를 했는지 모르지만 서른살이 넘은 홀애비와 열일곱살의 처녀는 부부가 되었다.
몇달이 지났다.
남하사네 처제는 임신을 하였고, 배가 불러 오고 있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그러던 어느날 남하사네 처제가 도망을 갔다는 소문이 퍼졌다.
임신을 한 상태에서 도망을 친 것이다.
물론, 남하사네와 임씨네는 소동이 났었겠지만 내가 거기까지는 알 수 없고...
남하사네 처제는 다시 돌아오지 않았다.
왜 남하사네 처제가 임신까지 한 상태에서 왜 도망을 쳐야 했는지? 그녀는 그후에 어떤 인생을 살았는지? 뱃 속의 아기는 어떻게 되었는지? 궁금한 생각이 들기도 하지만 알 길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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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일담 : 마을을 떠난 10년도 더 지난 '74년 나는 예전에 살던 마을을 버스를 타고 지나갔다. 예전 그 가게 앞에 임씨의 어머니가 손녀로 보이는 다섯살 쯤 된 아이를 데리고 나와 앉아 있었다. 아마 남하사네 처제가 도망간 후 다시 맞은 며느리가 낳은 아이였을 것이다.
2005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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