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 하루의 삶의 기록들

60년전(1965년) 고교 1년생 일기(2)

시골 훈장 2025. 4. 29. 18:30

 

1965년은 필자가 고등학교 1학년 시절이다. '65년 2월 강원도 양구에서 중학교를 졸업하고 큰 꿈을 품고 도청소재지인 춘천으로 유학하여 고등학교에 입학하였다.

아래의 일기는 고등학교에 다니기 위해 양구에서 춘천으로 이주하고 고교 입학을 전후한 며칠간의 기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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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5년 2월 25일(목)

 

오늘 아침 버스를 타고 집으로 돌아왔다.

서울 사진관에 들렸으나 사진이 다 안되었다고 한다.

2월 28일에 찾아 가기로 하였다.

집으로 와서 승균네 집에 가보았더니 승균이는 춘천으로 갔다고 한다.

저녁때 오중위가 옛날 이야기를 하였다.

저녁 식사를 마치고 공책을 나누는 데 복현이가 불평(전체를 교환해주지 않는다고)을 하기에 욕을 하고 한 대 때렸다. 주현이에게 크레용을 주었더니 무척 기뻐하였다.

춘천에 가면 있을 곳이 제일 문제가 된다. 고모댁에도 못가게 되었으니까. 집없는 설움.

 

2월 26일

오늘 구암리에 가서 이모에게 돈을 드렸다. (동생) 종근이와 놀다가 구암리에서 잤다.

 

2월 27일(토)

오늘 아침 창동에서 놀았다. 집에 와서 원리(아버지가 근무하시던 분교장)에 갔다.

원리에 가서 춘천 갔다온 결과를 아버지께 말씀드렸다.

원리서 저녁식사를 하고 책을 보다가 잤다.

 

2월 28일(일)

오늘은 일요일이다. 아침에 원리에서 넘어왔다.

신문을 보니 韓日會談 門是(問題의 오기)로 어수선하였다.

아마 신 을사조약일 것이다. 60년전 을사년에 외교권을 일본에게 강탈당하였듯이 이 을사 협약이야 말로 어업권을 약탈당할 것이다. 일본은 아직 야심을 버리지 않았다.

8억불에 눈이 먼 여당과 대통령 장관은 더 신중히 생각해 보십시오.

평화선의 폐지는 국토의 폐지와 같은 것이다.

북괴들아 우리는 애국적 반대를 한다. 너희는 우리를 이기지 못할 것이다.

(북한에서 한일회담 반대를 선동하는 데 대한 내 반응으로 생각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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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개야 물러가라.

 

근심 스러운 안개야 물러가라.

산에 덮힌 白雪이 햇빛에 녹듯이

이 마음에 덮힌 안개도 걷히거라.

이루려던 뜻 되지 않고 근심에 싸인 안개야

어서 내 곁을 멀리 떠나가거라.

더 이상 나를 괴롭히지 말아다오.

근심의 안개야. 1965. 2. 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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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향을 떠나 낯선 춘천 땅으로 가노라.

눈익은 고향 산천아 잘있거라.

나는 새로운 이상을 안고 가서

이상을 이루고 너희를 다시 대하리라.

아아 잊으랴. 이날을. 3월 4일 춘천에 오던 날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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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5년 3월(고교 시절)

 

3월 1일

오늘은 3.1절이다. 46년전 우리 조상이 일본에 항거했다.

우리는 이날을 잊지 말자. 나는 우리 조상의 얼을 받아 항일 투쟁을 하겠다.

이제 4일만 있으면 入學式이다.

오늘 저녁에 영호네 집에 갔다. 동선이와 하균이가 아니꼽게 굴었다.

집에 돌아와서 저녁식사 후에 어머니와 아주머니 이소위가 화투놀이를 하였다.

윗방에 안소위라는 군인이 새로 왔다. 세현이와(막내 남동생) 같이 올라가서 놀았다.

 

3월 2일

오늘 아침 어머니가 이웃 집에 가셨다.

내 入學金 문제로 급전을 꾸어 쓴 집이다. 커서 은혜를 갚아야 하겠다.

점심 때 토끼에게 먹이를 주었다.

저녁때 아버지가 원리에서 오셨다. 앞으로 살길이 막막하다.

(아버지가 초등학교 교사를 퇴직하셨다. 이 퇴직금으로 춘천에 대지가 없는 집을 사고 이사를 하였다, 아버지는

다른 일을 찾으셨으나 찾지 못하고 여름에 다시 초등학교 교사로 복직하셨다)

내 생각은 이렇다. 퇴직금과 집을 판 돈 중 14만원을 가지고 대지를 사고 집을 짓고 25,000원은 임시 생활비로 15,000원은 부채정리 5천원은 이사비용으로 나머지 45,000원은 사업비용으로 했으면 좋겠다.

 

3월 3일

오늘 교회에서 송별 예배를 보았다. 영수 나 문성이가 창리에서 떠난다.

송별 오락을 마친 후 영수네 집에서 놀다가 집으로 돌아왔다.

 

3월 4일

오늘 집에서 출발이다. 또 아버지의 생신이다. 생신에 차린 것도 없다.

아침식사 후 준비를 하고 춘천으로 오는 데 이영만을(춘천행 버스에서 만난 타교 출신동급생) 만났다. 1시쯤 고모님 댁에 임시 숙소소를 정했다. 내일은 입학식이다.

 

3월 5일

오늘이 입학식이다.

아침 일찍 일어나서 學校에 갔다. 서무과에 들어갔으나 월요일날 (환불금을) 준다고 한다.

입학식이 끝난 후 집에 돌아오니 눈앞이 깜깜하다. 물론 돈이 없어서다.

큰 고모 댁에 가서 겨우 500원을 구하고 승균이네 집에서 200원을 구했다. 아버지께 250원을 드렸고 책 4권을 사왔다. 영수증 분실로 또 하나의 고민이 생겼다.

이제 나도 고등학생이 되었으니까 공부를 열심히 하여서 김형래를 능가하리라

(김형래는 수석 입학생) 서울대학교에 입학하리라.

앞으로 生活 문제가 막연하다. 반 편성 결과 1학년 2반.

 

3월 6일

오늘 아침 8시 반쯤 학교에 등교했다.

첫째 시간에 현황조사, 2,3교시에는 훈련을 받았다.

구질구질한 훈련시간이 끝난 후 출석번호를 정했다. 방과후 청소를 하고 집으로 돌아왔다.

집에 온 후 국어책을 찾고 물리 도덕 책(헌책)을 구입하였다.

저녁 식사후 책상에 앉아 있다가 잤다.

 

F자 모표 구입함. 승균 어머니께 100원 드림, 책 100원, 모표 30원에 구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