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공학생의 날 기념 및 승공 전진대회
위의 사진은 1956년에 개최된 반공학생의 날 기념 및 승공 전진대회 사진이다.
반공학생의 날 기념식은 1945년 11월 18일 신의주에서 소련군정과 북한 공산당의 폭압에 반대하여 학생들과 시민들이 궐기한 날이다.
위의 사진은 메세지를 낭독하는 학생 대표의 모습이고 아래는 운동장에 운집한 학생들의 모습이다.
이때 행사에 참여한 학생들은 반공의거에 참여하여 투쟁한 북한의 학생들과 시민들을 생각하며 반공의 의지를 다졌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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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가 중학교 1학년때도(1962년) 반공 학생의 날 기념식을 했다.
필자가 60년전 기념행사를 기억하는 것은 이날 궐기대회가 있었고 시가행진이 있었는 데 중고 전교생이 양구읍 시가지를 행진하였다.
행진을 마치고 학교에 돌아왔을 때 고3 간부들이 무질서한 태도를 나무라며 남학생 전원을 운동장에서 주먹을 쥐고 엎드려 뻗혀를 시켰다(여학생들도 벌을 받았는 데 엎드려 뻗쳐는 아니고 다른 벌을 받았던 것 같다)
몹씨 추운 날씨라 손이 시럽고 고통스러웠기 때문에 오래 기억되는 것이리라.
아래는 신의주 학생 사건에 대한 설명이다.
신의주 학생 사건과 함께 함흥 학생 사건도 거론되었는 데 이들 두 사건은 소련군이 북한을 점령하고 이들의 후원아래 북한에 공산당이 조직되고 조직을 확대해 가며 통치를 시작한 초기에 발생한 반공사건이라는 데 의미가 있다고 할 수 있다.
그후 북한 정권이 공고화되고 탄압이 심해지면서 대규모의 반공 투쟁은 표면적으로 일어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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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의주학생의거라고도 한다. 이 사건은 1945년 11월 18일 신의주 서쪽 약 20㎞ 지점의 용암포 제일교회에서 열린 시민위원회 주관의 '인민위원회 지지대회'에서 연단 위에 오른 학생자치대 대표가 소련군과 조선공산당의 실정과 횡포를 비난하는 한편, 조선공산당이 정치훈련소로 사용하는 수산학교의 반환을 요구하자, 군중이 이에 호응하면서 시작되었다. 이날 대회 참석자들간에 격투가 벌어져 사망자 1명과 부상자 12명이 발생했다.
이 소식을 접한 신의주 학생자치대 대표들은 시위를 계획하고, 11월 23일 정오와 오후 2시에, 신의주에 있는 6개 남녀중학교 학생들을 동원하여 평안북도 인민위원회·보안부·당위원회를 향한 시위를 벌였다. 이에 보안대와 소련군은 무력으로 대응하여 사망 23명, 부상 700여 명 외에 1,000명 이상이 체포되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이 사건은 본질적으로 당시 용암포시 인민위원장인 이용흡을 위시한 일부 공산주의자들의 오만과 횡포에서 비롯된 것으로 알려졌다.(출처 -다음 백과사전)
함흥 학생 반공 의거 또는 함흥 학생 반소 의거는 1946년 3월 11일. 함경 남도 함흥시에서는 남녀 학생들이 반공,반소 의거를 일으킨 사건이다.
함흥 반공학생사건 - 위키백과, 우리 모두의 백과사전 (wikipedia.or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