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며 생각하며

몰입하고 한 우물을 파야 무엇인가를 이룰 수 있다.

시골 훈장 2016. 1. 20. 11:54

아침 8시 무렵 스마트폰으로 기상청 일기예보를 보니 우리동네 기온이 -19도라고 한다.

올해들어 가장 추운 날씨다.

아침식사를 하고 양구에 거주하고 있는 친구의 소식이 궁금하여 전화를 해보았다.

양구는 국토의 정중앙이라는 내륙지방답게 춘천보다 훨씬 추운 곳이어서 그곳 상황이 궁금했기 때문이다.

그 친구가 있는 곳은 -22도까지 내려갔다고 한다.

그러면서 새벽에 물안개가 피어오르는 모습을 찍기 위해 고대리를 다녀왔다고 하였다.

혹한 속에서 사진촬영을 다녀왔다는 말에 놀라 그 친구에게 반문하였다.

"너 제 정신이냐?"

친구녀석의 대답이 걸작이었다.

"사진찍는 사람치고 제 정신인 사람은 없다" 

그러면서 한술 더뜬다.

"나 지금 돌산령으로 사진촬영하러 가고 있다"


초등학교 동창인 녀석은 초등학교 교사로 정년퇴임하고 주말에는 춘천에서 가족과 함께 생활하고

주중에는 양구 고향집에 거주하며 텃밭 가꾸기와 사진촬영을 취미로 생활하고 있다.

교사 재직시절부터 수십년간 사진촬영을 취미로 활동한 그는 중견 작가로 인정받고 있다.

특히 구름사진을 전문으로 찍고 있는 데 돌산령, 성곡령 등 양구 지역의 산정에서 새벽에 피어오르는 구름의 모습을 카메라에 담아왔다.

여러 차례 전시회도 개최할만큼 역량이 있는 사진작가인데 오른 그 친구와 통화를 하면서 그 비결을 알게 되었다.


그렇다. 어떤 일에 미치지 않고는 평균보다 훨씬 높은 성취를 할 수가 없다.

어떤 분야에 일가를 이룬 분들을 보면 그 일에 몰입하고 있는 것을 알 수 있다.

운동선수든, 예술가든, 작가든, 학자든 그 분야에서 인정받는 대가들은 자신의 일에 몰입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평범하게 살아온 내가 남에게 알려질만큼 두드러진 실적을 내지 못한 것은 당연하다는 생각이 든다.

그러나 비록 작은 일이지만 어느 정도의 성취와 진보를 이룬 분야에서는 나 역시 한때 몰입을 했던 시절이 있었다.


바둑을 처음 배울 때였다.

집안에 있을 때나 학교에 가서나 잠자리에 들 때나 온통 바둑생각뿐이었다.

천정의 무늬가 바둑판으로 보였다.

그런 시기를 겪고 나니 바둑이 좀 늘었다.

처음 타자를 배울 때였다.

컴퓨터(당시는 디스켓을 넣고 부팅을 시키는 XT 컴퓨터를 사용하던 시절이다) 앞에 앉기만 하면 한메타자 자판을 두드렸다.

학교를 옮기고 286 컴퓨터가 나왔었는 데 1년 동안 수업이 빈 시간이면 컴퓨터 앞에 앉아 자판을 두드리며 타자 연습을 했다.

덕분에 타자 속도가 평균보다는 빠르게 되었고, 워드 1급 자격을 취득할 수 있었다.

50대 초반에 한자 자격증 공부를 할 때도 볼펜이 여러자루 닳도록 한자를 써가며 암기를 했다.

2년간 세번을 실패하고 네번째 도전에서 한자 1급 자격을 취득할 수가 있었다.


대학 1학년때(1969년)의 일이다.

당시 박정희 대통령이 장기집권을 위해 대통령 중임제한을 철폐하는 삼선개헌을 시도하였고 이는 야당과 학생들의 반발을 불러일으켰다.

대학가에서는 반대 시위가 치열하게 전개되었고, 이를 차단하기 위해 대학을 조기방학하고 개헌투표가 끝난 10월이 되어서 개학을 했다.

무려 4개월 가까운 장기방학이었다.

중학교때 영어의 기초 학력을 다지지 못하고 고등학교에 진학한 나는 고등학교때 영어는 거의 포기상태였었다.

수업을 따라가지 못하였으니 영어성적은 형편없었고 이는 대학입시 실패로 이어졌다.

휴교기간 중 도서관에서 일반화학(General chemistry)라는 600쪽이 넘는 원서를 빌려다가 처음부터 끝까지 읽었다.

모르는 단어를 찾아 노트에 기록을 하고 암기를 하며 책 한권을 읽는 데 3개월이 넘는 시간이 걸렸다.

단어를 적은 노트가 몇권이 되었는 데 이 과정을 통해서 영어로 전공서적을 읽을 수 있는 능력을 어느정도 기를 수 있었다.


내가 한 분야에서 일가를 이루지 못한 것은 어느 분야이든 지속성을 가지고 노력하지 못하였다는 데에 있다.

다시 말하면 한우물을 파지 못하였던 데에 있었던 것이다.

그러다 보니 남에게 인정을 받을만큼 성취한 분야가 없게 되었다.

만약 어느 한 분야에 지속적인 관심을 가지고 꾸준히 노력했다면 나 역시 한분야에 일가를 이룰 수 있었을 수도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뿌린대로 거둔다는 진리대로 뿌리지 않은 곳에서 거둘 수는 없는 것이다.


친구녀석이 멋진 장면 하나를 찍기 위해 혹한도 마다하지 않고, 수없는 실패와 시행착오를 거듭하면서 오랜 세월을 사진이라는 한분야에 몰입하여 일가를 이룬 것이 우연이 아니라는 것을 생각하며 떠오르는 생각들을 두서없이 적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