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골훈장의 뒤돌아 보기

"선생님 기형이가 컴퓨터실에서 자유낙하했어요!!!"

시골 훈장 2015. 2. 15. 19:09

광판중학교에 부임한지 한달이 못되었을 때였다.

어느날 중식시간이었다. 재원이라는 2학년 녀석이 다급하게 교무실로 뛰어 들어오며 외친다.

"선생님 기형이가 컴퓨터실에서 자유낙하했어요"

나는 깜짝 놀라서 재원이와 같이 화단 쪽으로 뛰어갔다.

기형이 녀석이 멋적게 웃으며 걸어오고 있었다.

컴퓨터실이 2층에 있었는 데 장난이 심한 녀석은 2층 창문을 통해 화단으로 뛰어내린 것이다.

2학년 과학시간에 운동에 대해서 배우고 있었는 데 전시간에 속력이 일정하게 변하는 운동으로

등가속도 운동이나 자유낙하 운동에 대해 수업을 했는 데(등가속도 운동이라는 용어는 사용하지 않고 개념만 수업을 함)

재원이 녀석이 기형이가 창문에서 뛰어내린 것을 자유낙하를 했다고 말한 것이다.

기형이 녀석이 장난으로 뛰어내린 것이고 다행히 다친 곳은 없었지만 불러다가 단단히 주의를 주는 선에서 마무리지었다.

 

그때로부터 12년이 지난 그저께(2월 13일 금요일)의 일이다.

수동리 밭에 가서 농작물 그루터기를 태울 준비를 하기 위해 깻대와 고춧대 등을 모으는 작업을 했다.

핸드폰이 울렸다. 주문한 퇴비를 가지고 가겠다는 전화였다.

마침 밭에 있었기 때문에 가져다 달라고 했다.

유기질 퇴비를 실은 큰 트럭이 왔다.

좁은 농로길을 익숙한 솜씨로 후진해서 들어왔다.

운전기사와 한 청년이 주문한 수량만큼 퇴비를 내려놓았다.

그런데 청년이 나를 보더니 과학선생님 아니시냐고 묻는다.

얼굴은 기억이 났지만 이름이 잘 생각나지 않았고, 어느 학교에서 가르쳤는지도 기억이 나지 않았다.

이름을 물으니 기형이라고 한다.

광판중에서 자유낙하했다고 소동을 일으켰던 녀석이다.

아버지를 도와서 농사일 등을 하고 있다고 한다.

기형이의 아버지에게 인사를 했다. 아버지는 기형이가 작년에 결혼을 했고 두달전에 아기 아빠가 되었다고 하였다.

기형이에게 참 잘했다고 칭찬을 했다.

요즈음 40이 되어서도 결혼을 하지 않고 있는 경우가 많고, 또 아이를 낳지 않는 경우도 많은 데

30세도 안되어서 결혼하고 아기 아빠도 되었으니 애국자라고 했다.

 

장난이 심한 녀석들도 장성하면 대부분 제몫을 하며 살아간다.

공부를 잘한다고 하는 것은 여러 재능 중의 한가지인데 너무 공부에만 집착을 하고 있다.

내 자신 역시 교직에 있을 때 공부를 잘하는 녀석들을 더 생각하였던 것은 사실이다.

또 경쟁 때문에 제자들에게 점수를 가지고 압력을 가하고 체벌이나 상응하는 벌을 가하기도 하였다.

특히 초임교사 시절에는 정도가 너무 심하였다.

당시의 분위기와 문화가 그렇다고 해도 너무 심했다는 생각이 들며 그때 내게 심한 벌과 질책을 받은 제자들에게 미안한 생각을

금할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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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낙하하면 또 생각나는 일이 있다.

'81년쯤의 일로 기억된다.

횡성군 시골에 있는 갑천고등학교에 근무할 때였다.

시골 고등학교라 전부 6학급이었고 중고가 병설되어 있었다.

고3 수업을 하고 있었는 데 수업 종료 종이 울렸지만 설명을 다못한 부분이 있어서 마저 설명을 하고 있을 때였다.

갑자기 창밖에서 "쿵"하는 소리가 났다.

창밖을 내다보니 한 여학생이 2층에서 화단으로 떨어진 것이었다.

깜짝 놀라 수업을 끝내고 밖으로 나가보니 1학년 여학생이 2층에서 떨어진 것이었다.

장난이 심한 이른바 말괄량이었는 데 옆반의 친구를 놀래주려고 창밖의 난간을 통해 옆의 교실로 이동을 하다가 실족을 한 것이다.

갑자기 떨어졌기 때문에 충격을 받아 잠시 정신을 잃었던 것 같다.

즉시 담임인 박선생이 얼굴이 새하얗게 변해서 달려왔고, 학생을 숙직실로 옮겼다.

할아버지가 한의사여서 어깨너머로 침술을 익혔다고 하는 데 몇군데 침을 놓고 하더니 학생이 깨어났다.

괜챦으냐고 물으나 아무렇지도 않다고 하며 일어나서 교실로 걸어가는 것이었다.

담임은 그때서야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학교는 성장기의 아이들이 모인 곳이라 몸을 움직이는 장난을 하기 마련이고 그러다 보니 위험한 일을 겪기도 한다.

또래끼리 장난을 치다가, 또는 학습활동 중에 부주의하거나(지도하는 교사나 학생) 하는 경우 다치게 되는 경우도 있다.

또 애들끼리 싸우는 경우도 생기게 된다.

일방적으로 폭력을 가하는 학교폭력이 아니고, 애들끼리 놀다가 의견충돌이나 의사가 맞지 않아 싸우게 되는 경우 큰 상처를 입지 않는 한 단단히 주의를 주고 선처를 하였다.

옛날 어른들의 말씀이 "애들은 싸우며 큰다고 했기 때문이다" 일방적인 폭력으로 가해자와 피해자가 생기는 경우가 아니고

대등한 입장에서 놀다가 의견이 달라서 싸우는 경우는 화해를 시키고 주의를 주면 언제 그랬냐는 듯이 다시 잘 논다.

 

학교를 떠난지도 만 4년이 되었다.

이제 교직에 있었던 시간들은 아름다운 추억으로 때로는 회한과 아쉬움으로 반추되곤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