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골 훈장의 뒤돌아보기(3) - 실수 투성이의 서투른 햇내기 교사
시골 훈장의 뒤돌아보기(3) - 실수 투성이의 서투른 햇내기 교사
'74년 5월 30일 부임 인사를 하였다.
교무실에서 교직원들에게 하는 인사와 운동장에서 학생들에게 하는 인사는 실수 없이 하였다.
교직 선배이시기도 한 사촌형님에게 충분히 교육을 받고 수없이 머리 속에서 예행연습을 했기 때문이다.
수업은 2학년 3개반과 1학년 2개반을 담당하게 되었고 수업 시수는 22시간이었다.
당시에는 3학년을 제외하고는 보충수업도 없었고 신임이라 복잡한 업무도 주어지지 않았고 담임도 없어 교사의 직무 수행에 큰 부담을 느끼지 않았다.
첫 수업도 무난히 넘어 갔다.
2학년 수업이었는 데 함수에 대한 정의를 수업하였던 것으로 기억된다.
신임 교사를 난해한 질문을 해서 골탕을 먹이는 경우가 있다고 이야기를 들었지만 우려했던(?)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부임 인사와 첫날 수업을 별 실수 없이 그런대로 넘어가서 한숨을 돌렸다.
첫출근을 해서 보니 교무실에 대여섯 녀석이 와서 벌을 받다가 청소를 하기도 하였다.
무슨 일인가 알아보니 컨닝을 친 녀석들이다.
월말 고사인가를 보았는 데 시험지 누출 사건이 터졌다고 한다.
당시에는 숙직과 주번이 있었다. (90년대 중반까지 숙직이 있었음)
저녁 퇴근시간부터 다음 날 아침 출근시간까지 학교 경비는 숙직이 책임을 졌다.
주번 교사가 출근 시간보다 조금 일찍 출근을 하면 숙직 교사가 아침 식사를 하고 다시 출근을 하였다.
숙직을 하면 오전에는 쉬게 되어 있지만 수업 때문에 급히 가서 아침만 먹고 출근을 하여 수업을 해야 했다.
밥을 먹고 와야 하니 주번교사가 오지 않으면 기다리지 못하고 식사를 하러 가야 하는 경우가 생겼다.
시험을 보는 날 주번 교사가 빨리 출근을 하지 못하자 숙직 교사는 식사를 하러 나갔고 이 때문에 공백이 생겼다.
교무실에 업무가 있어 온 녀석들이 선생님이 아무도 없자 교무실을 둘러 보게 되었고 잠금장치가 망가진 캐비넷을 열어 보았는 데 여기에 시험지가 보관되어 있는 것을 보게 되었다.
녀석들은 몇개 과목의 시험지를 한장씩 빼서 교무실을 빠져 나갔고, 이것을 맞추어 보고 대박을 터뜨렸다.
그러나, 세상에서 비밀은 없는 법, 녀석들은 무용담을 급우들에게 자랑을 하게 되고 마침내 시험지 도난 컨닝 사건은 적발되었다.
여섯 명인가가 1주일 정학을 받게 되고 2학년 6개 과목을 재시험을 치르게 되었다.
시험문제는 선배 교사가 출제를 하였고 막 수업을 시작한 내가 채점을 하게 되었다.
당시 수학시험은 답지가 따로 있지 않고 문제를 풀어서 채점을 하는 경우가 많았다.
그런데 채점을 하다보니 한 녀석의 시험지에 '5문제 쯤 보고 썼을 것임'이라는 감독 교사의 메모가 있었다.
나는 메모의 내용대로 다섯문제에 해당하는 점수를 감점하여 점수를 매겼다.
고등학교때 어느 수학선생님이 채점한 시험지를 내주었던 기억이 나서 성적을 기록하고 시험지를 내주었다.
다음 날 그 학생의 아버지가 학교를 찾아왔다.
감독을 했던 선생님이 아이의 아버지를 만났고 무슨 이야기가 오갔는 데 점수를 감점하지 말고 원래의 점수를 부여하라고 했다.
지금 생각해 보면 위와 같은 경우가 있으면 채점한 시험지를 내주면 안되는 것이다.
아이의 아버지가 양식이 있는 분이라 조용히 넘어갔지 그렇지 않았으면 큰 소동이 일어났을 사안이었다.
나중에 보니 녀석은 공부도 잘하고 심성이 착해 컨닝을 할 아이는 아니엇다.
아마 그의 태도가 감독 선생님에게 오해를 사게 했던 모양이다.
처음이라 그랬는지 나에 대한 별 질책이 없이 이 사건은 조용히 지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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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월이 되어 기말고사를 치르게 되었다.
나는 2학년 문제를 출제하고, 선배인 황영중 선생님은 1학년 문제를 출제하기로 했다.
교사가 되어 처음 출제를 하게 되는지라 긴장이 되었다.
나름대로 머리를 짜내가며 출제를 하였다,
고등학교때 수학시험은 거의 모두 풀이과정을 보는 주관식으로 치렀는지라 70% 이상은 풀이 과정을 보는 주관식 문제로 내었다.
일부는 교과서에 있는 문제를 그대로 냈지만 대부분은 교과서의 문제를 숫자를 바꾸고 형태를 바꾸어 출제를 했다.
황선생님이 문제를 보더니 고개를 좌우로 흔든다.
문제가 너무 어렵다는 것이다.
교과서에 있는 문제를 숫자도 바꾸지 말고 그대로 내야지 이런 식으로 내면 학생들이 풀지 못한다는 것이다.
나는 고등학교 시절 생각만 하고 수학문제를 교과서 그대로 출제하면 어떻게 하느냐고 반문하였다.
선배의 충고를 무시하고 원안대로 출제를 하여 시험을 치르게 되었다.
수학 시험이 거의 끝시간에 있어 채점을 하지 못하고 수업을 하며 문제를 풀어 주게 되었다.
문제를 푸는 데 애들이 환호성을 지른다.
나는 시험을 잘 보아서 환호성을 지르는 줄 알았다.
수업이 끝나고 채점을 하던 나는 놀라고 말았다.
30-40%가 0점이 나왔고 20점 미만이 80%가 넘었다.
3개반 200명 중 최고 점수는 60점이었다.(이때 60점을 맞은 녀석은 나중에 서울대에 입학했다고 함)
성적이 너무 나빠 나는 당황하고 말았다.
선배에게 물어 보니 아이들 수준이 낮아 교과서에서 그대로 출제하지 않으면 안된다고 하였다.
한반에 0점이 20여명씩 나온 성적을 그대로 내보낼 수는 없었다.
당시는 지금처럼 성적관리 규정이 엄격했던 시절이 아니어서 선배는 일률적으로 20점씩 성적을 올려주라고 했다.
득점에 20점을 더한 성적을 성적표에 기록하여 주는 것으로 사태를 수습하였다.
그뒤 초임 발령을 받은 후배들에게 나는 이 경험을 이야기하여 주었다.
시험 문제를 교사의 주관이 아닌 아이들의 눈높이에 맞추어서 출제하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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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날 숙직을 하는 데 전화가 걸려왔다.
교육청 직원인데 교육청 담장 옆에서 두 녀석이 담배를 피는 것을 붙잡았는 데 한 녀석은 우리 학교 학생이고 다른 녀석은 이웃 학교에 다니는 녀석이라고 했다.
다음 날 나는 교육청 직원이 알려준 녀석을 데려다가 심문(?)을 하였다.
나는 담배를 피웠다는 녀석만 혼내주고 담임에게 인계를 하려 했는 데 이 녀석은 묻지 않은 말까지 하는 것이다.
"선생님 사실은 저 혼자 핀 것이 아니고 누구도 같이 피웠습니다."
나는 녀석이 불은 놈을 불러다가 물었더니 다른 녀석도 같이 피웠다고 분다.
이런 식으로 하다 보니 6-7명이 엮어 나오게 되었다.
아마 혼자서 혼나기는 싫었떤 모양이다.
이렇게 되니 흡연 사건은 큰 사건(?)이 되었고, 골초 일당은 학생과에서 벌을 받게 되었다.
학생과장은 나보다 10년쯤 위인 과학선생님이었는 데 아주 무시무시하였다.
1주일 정학을 당하게 되고 매일같이 교무실 청소와 화장실 청소를 했다.
교무실에서 대걸레질을 할 때 어떤 선생님들은 "한대 피면서 쉬었다가 하지"하고 농을 하기도 했다.
지금도 담배를 피는 녀석들이 있지만 과거처럼 큰 벌을 내리지는 않는다.
지금 쯤 50대 초반이 되었을 녀석들은 담배를 피다가 엮여서 정학을 당했던 것에 대해 씁쓸한 기억을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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담임 교사가 출장을 가거나 사정이 있어 나오지 못하게 되면 임시 담임이 학급을 관리하게 된다.
당시에는 중고가 교무실을 같이 쓰고 있었고 업무도 통합이 되어 있었다.
어느날 교무과장님이 1학년 보통과를 임시 담임을 하라고 했다.
교납금 미납자에 대한 제적 예고 통지서를 몇장 주면서 전달을 하라고 했는 데 깜박 잊고 전달을 하지 못했다.
며칠 후 주윤중이라는 학생의 아버지가 학교를 찾아왔다.
교납금 미납으로 제적통지를 받았다는 것이다.
아이의 아버지는 제적을 하게 되면 사전에 예고라도 해야 하지 않느냐고 했다.
나는 등에서 땀이 흘렀다.
제적을 당하면 학교에 다닐 수가 없는 데 내 실수로 윤중이가 학교에 다니지 못하면 어떻게 하는가 하는 염려와 더불어 내 작은 실수가 한 학생의 앞날을 망치는 것 같은 생각이 들자 당황할 뿐 어떻게 해야 할지 알 수가 없었다.
교무과장이 서무과에를 오가고... 서무과에서 아직 재적상황 보고를 하지 않았기 때문에 돈을 내면 제적이 취소될 수 있다고 했다.
나도 모르게 땅이 꺼지게 큰 한숨이 나왔다.
햇내기 신임 교사는 아무것도 모르고 정신없이 우왕좌왕하면서 여름방학을 맞게 된다.
선배들은 이런 나의 모습을 어떻게 보았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