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귀신은 못속여도 선생님은 속인다."
요즈음 청문회에서 장관 후보자들의 거짓말이나 위증이 논란이 되고 있다.
사람은 궁지에 몰리면 거짓말을 하는 것은 본능인 것 같이 생각된다.
아들 녀석이 네살쯤 되었을 때의 일이다.
녀석은 옛날 이야기를 듣는 것을 좋와했고, 동화책을 읽어 달라고 조르곤 했다.
'스컹크 지미'라는 동물이 주인공인 동화를 읽어 주었다.
스컹크 지미가 양계장에 가서 달걀을 훔쳐먹고 이를 추적한 사냥개에 쫒겨서 나무 구멍 속에 숨었는 데 양계장 주인이 나무를 베어내고 잡으려는 것을 지미의 친구들이 땅굴을 파서 탈출시킨다는 이야기였다.
하루 종일 뛰어다니며 놀던 아들 녀석이 피곤하였던지 자다가 이부자리에 지도를 그리고 말았다.
아침에 일어나 누가 오줌을 쌌냐고 묻자 아들 녀석은 자기는 오줌을 싸지 않았다고 했다.
누가 그랬느냐고 다그치자 동화 속의 스컹크 지미가 와서 오줌을 싸고 갔다고 천연덕스럽게 말하는 것이었다.
정말이냐고 묻자 아주 진지한 표정으로 정말이라고 하는 것이었다.
아내와 나는 웃고 말았다.
아이들도 자신이 궁지에 몰리면 이를 면하기 위해 거짓말을 하는 경우가 있다.
아니면 아이 자신이 정말로 그렇게 믿고 있었는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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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교에서 학생들을 지도하다 보면 애들이 교사에게 거짓말을 하는 경우가 많다.
모교인 양구 중학교에서 근무할 때다.
어려서 양구에서 초등학교와 중학교를 졸업했기 때문에 양구의 실정은 누구보다 잘알 수밖에 없는 데 이를 잘 모르는 녀석들은 내가 양구에 대해 문외한인 줄 알고 거짓말을 하는 경우가 많았다.
지각을 하는 녀석들에게 이유를 물으니 집이 멀어서 그렇다고 한다.
어디냐고 물으니 무슨무슨 골이라고 대답을 한다.
학교까지 오는 데 시간이 얼마나 걸리냐고 물으니 한 시간도 더걸린다고 한다.
나는 10분도 안걸리는 데 무슨 한 시간이 걸리느냐고 하면서 꿀밤을 한대 주었다.
어렸을 때 같은 마을에 살았던 선배의 조카를 가르키며 녀석이 아기때 기저귀를 갈아차는 것을 본 적이 있었다고 했다.
그랬더니 아이들이 "우우~" 하면서 거짓말이라고 한다.
나는 선배의 조카에게 집에 가면 할머니에게 확인하고 오라고 했다.
다음날 물으니 녀석은 머리를 긁적이며 내 말이 맞다고 할머니가 확인을 하셨다고 했다.
그 뒤에 적어도 지역 실정이나 통학거리를 가지고 나에게 거짓말을 하는 녀석은 없었다.
한번은 J라는 녀석이 외할머니가 돌아가셨다고 했다.
상고처리를 하고 할머니의 장례를 마치고 오라고 보냈다.
'70년대 당시에는 전화가 없던 시절이고, 설마 장례 문제로 거짓말을 하랴 싶어서 확인을 하지 않았다.
그런데 J가 학교에 다니기 싫다고 나오지를 않는 것이었다.
J의 가정을 방문하여 그의 아버지를 만나 상고로 결석하였던 이야기를 했다.
그의 아버지는 피식 웃으면서 녀석의 외할머니가 5년전쯤 돌아가셨다고 했다.
춘중에 근무할 때도 비슷한 일이 있었다.
U라는 녀석이 있었는 데 그의 아버지는 양복을 만드는 기술자였다.
한번은 저녁식사에 초대를 받아 저녁 대접을 받은 적이 있었다.
5월쯤의 일로 기억된다.
조회가 끝난 후 J는 할머니가 돌아가셨다고 했다.
나는 상고처리를 해주며 빈소가 어디냐고 물었다. 할머니가 원주에서 사시다가 돌아가셨다고 했다.
잘 다녀 오라고 하고 U를 귀가시켰다.
교통사정이 나빴던 당시 원주까지 가서 문상을 할 수도 없었다.
삼우제가 끝난 후 U의 아버지에게 전화를 해서 모친상을 당하셨는 데 문상을 가지 못해서 송구스럽다고 말을 했더니
U의 아버지는 무슨 일이냐고 반문을 한다. U가 할머니가 돌아가셨다고 해서 상고처리를 해주었다고 했더니 그는 깜짝 놀라면서
할머니가 편챦으시기는 하지만 돌아가시지는 않았다고 하였다.
학교에 나오기 싫었기 때문에 살아계신 할머니가 돌아가셨다고 거짓말을 한 것이다.
다음 날 녀석은 교무실에 와서 나에게 엄청 혼났다. 아마 집에서도 많이 혼났을 것이다.
중간고사나 기말고사 모의고사 등을 보면 우편으로 성적표를 발송했다.
아이들은 성적표가 집으로 오는 날이 가장 긴장되는 날이었을 것이다.
성적이 좋다고 칭찬을 받는 경우는 드물다.
상위권은 상위권대로 하위권은 하위권대로 부모에게 닥달을 당하게 된다.
그러니 할 수만 있으면 성적표가 배달되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이었을 것이다.
그렇다고 주소를 적고 우표를 붙인 성적표 발송용 봉투를 내지 않을 수가 없다.
최대한 머리를 굴린 것이 부모님이 바빠서 우편물을 즉시 확인하지 못하는 친구의 집 주소를 적는 것이다.
그리고 친구를 통해 성적표가 든 우편물을 받아다가 폐기하면 되는 것이다.
이런 꼼수를 아는 나는 일일이 주소를 확인하여 다른 주소를 썼으면 집주소로 수정을 하여 발송하였다.
처음 성적표를 발송할 때 이런 일들이 일어났다.
성적표가 집에 도착하였을 때쯤 주소를 확인하고 친절하게 고쳐서 보내주었다고 말을 하면 한숨을 쉬는 소리들이 들렸다.
거짓말을 하여 위기를 모면하려는 제자와 속지 않으려는 교사 사이에서는 치열한 두뇌게임이 벌어지는 것이다.
당시에는 아이들에게 속지 않고 속이려는 녀석들을 적발하여 혼내주는 것이 잘하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지금 생각하면 이것이 과연 최선의 방법이었을까? "가끔은 모르는 척 속아주는 것도 필요할 때가 있지 않았을까?"하는 생각이 들 때도 있다.
'77년에 양구를 떠났다가 16년만에 다시 모교인 양구중학교에 와서 근무하게 되었다.
2학년 1반을 담임했는 데 학급에 S라는 녀석이 있었다.
몸이 아파 병원에 가야 한다고 조퇴를 해달라고 한다.
나는 조퇴를 시켜 주었다. 그런데 다음 날도 같은 이유로 조퇴를 시켜 달라고 했다. 또 보내 주었다.
제자들을 불신하면 안되지만 혹시나 해서 병원에 확인을 하였다.
병원에서는 S라는 환자가 치료를 받으러 온 적이 없다고 했다.
다음날 녀석에게 어제 정말 병원에 갔었느냐고 물었다. 눈치가 빠른 녀석이라면 상황파악을 하고 잘못했다고 하였을 것이다.
단순한 녀석은 상황파악을 못하고 병원에 가서 치료를 받았다고 한다.
병명과 치료받은 내용을 물으니 그럴듯하게 대답을 한다.
학년초에 아이들을 장악해야 학급운영이 순조롭기 때문에 녀석은 시범케이스로 되게 혼났다.
몇대를 때리고 난 후 "귀신은 속여도 선생님은 못속인다"를 복창하라고 했다.
당황한 녀석은 "선생님은 속여도 귀신은 못속인다"라고 복창을 한다.
이를 들은 아이들은 허리를 꺾고 웃고....
다시 복창을 하라고 하니 또 "선생님은 속여도 귀신은 못속인다"라고 복창을 한다.
교실은 웃음 바다가 되고.... 나도 속으로는 우습지만 억지로 위엄이 있는 얼굴을 하고 반장녀석에게 내가 어떻게 복창하라고 했느냐고 물으니 반장녀석이 내가 말한대로 대답을 한다.
다시 복창을 하라고 하니 그제서야 녀석은 내가 가르쳐준 시나리오대로 복창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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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뒤로 5-6년의 시간이 흘렀다.
아마 녀석이 고등학교를 졸업하던 해였을 것이다.
버스에서 우연히 녀석을 만났다. 고등학교를 졸업한 녀석은 청년의 모습을 하고 있었다.
대학은 진학을 하지 않았고 집안 일을 돕고 있다고 했다.
나는 부사관으로 입대하는 것이 어떠냐고 하자 오토바이 사고로 다리를 크게 다쳐서 현역으로 입대를 할 수 없데 되었다고 한다.
녀석에게 평생 먹고 살만한 다른 일을 찾아 보라고 하고 병원에 간다고 거짓말을 하다가 혼난 사건을 기억하느냐고 묻자
그는 "선생님 쑥스럽게 그 말씀을...."이라고 하면서 머리를 긁적였다.
자라서 어린 시절을 생각하면 단순하고 어리석었음을 자각하게 된다.
때로는 아름다운 추억이되어 회상되기도 한다.
이렇게 시행착오를 거치며 아이들은 자라서 어른이 된다.
40년 가까이 몸담았던 교직을 떠나 지난 날의 일들을 돌아보면 제자들과 얽혔던 일들이 때로는 아름다운 추억으로, 때로는 시행착오에 대한 회한과 자책으로, 제자들에 대한 사과하고 싶은 미안한 감정이 교차되어 떠오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