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나가 돈을 벌으니 다른아이가 밥먹도록 해주세요."
한때 그랜저 타는 기초생활 수급자 문제가 보도되어 논란이 일은 적이 있다.
기초생활 수급자를 정밀조사해 보니 고급승용차가 있거나 은닉된 재산을 가진 자들이 상당수 있었다는 발표도 있었다.
기초생활 수급대상자의 여건이 안되어 대상에서 제외할 경우 담당 사회복지사를 협박하거나 위협을 가하는 경우도 있다는 보도도 있었다.
이런 보도를 볼 때마다 이름이 기억나지 않는 한 제자의 모습이 떠오른다.
필자가 두번째로 모교인 양구중학교에 근무할 때의 일이다.
고교시절 필자와 같은 반이었던 장세평군이 한국통신 양구지부 노조위원장으로 일하고 있었다.
세평이는 독실한 가토릭 신자로 남을 돕는 일과 봉사를 하는 일에 앞장서고 있었다.
방학때마다 당시 중학생이던 아들 인곤이를 데리고 소록도에 봉사활동을 하러 갔다.
여러 선행이 있었지만 기억할만 한 일은 학교급식이 시작되기 전인 당시에 장세평이는 독지가들의 후원을 받아 양구읍내 중고등학교에 재학하는 가난한 학생들을 위하여 여러 해동안 점심 급식을 지원하고 있었다.
양구중고교에서 각각 10명, 양구여중고에서 각각 10명씩 모두 40명의 학생들의 점심 급식을 지원하였다.
학교 구내 식당이나 인근 식당에 급식비를 납부하고 학교에서 선정한 극빈학생들에게 하루 한끼 식사를 지원했다.
필자가 양구중학교 학생부장으로 재직하던 '96년에도 급식지원이 이루어지고 있어 10명의 재학생이 혜택을 받고 있었다.
'96년에는 학생부장이라는 직책을 맡고 있었기 때문에 급식보조 대상학생 선정의 업무를 내가 주관하게 되었다.
교무회의에서 지원내용을 설명하고 학급담임의 추천을 받아 위원회를 열어 대상학생을 결정하였다.
5월의 일로 기억된다. 어느날 할머니 한분이 찾아오셨다. 가정형편이 어려워서 손자가 급식지원을 받게 해달라는 부탁이었다.
대상학생이 제한되어 있고 이미 학기가 시작된지도 여러달이 되어 사정이 딱하지만 할머니의 부탁을 당장 들어드릴 수가 없었다.
그런더 하루는 급식지원을 받고 있는 한 학생이 나를 찾아왔다.
무슨 일로 왔느냐고 묻자 그 학생은 "누나가 취직을 해서 돈을 벌기 시작했으니 자기 대신 다른 학생을 지원해달라"고 말했다.
나는 그의 말에 무어라 형언할 수 없는 감동을 받았다.
정말로 다른 아이로 바꾸어도 좋느냐고 확인을 하였지만 그의 뜻은 변함이 없었다.
담임교사에게 이를 알리고 행정절차를 밟고, 후원을 주관하는 장세평이에게 통보를 하고 대상자를 바꾸었다.
할머니가 찾아와서 부탁한 학생이 대신 급식보조 대상자로 선정되어 중식지원을 받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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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신이 받고 있던 지원을 더 어려운 학생에게 해달라고 부탁한 학생은 참으로 심성이 바른 학생이다.
바록 누나가 취직을 했다고 하더라도 많은 봉급을 받는 처지는 아니었을 것이다.
그럼에도 자신보다 더 어려운 처지의 학생을 위해 자신이 받던 혜택을 양보한 것은 아무리 칭찬을 해도 부족함이 없을 것이다.
이 학생이 아름다운 양보를 한 데에는 부모님의 동의가 있었을 것이다. 학생못지 않게 부모님 역시 훌륭한 분이라 생각한다.
지금쯤 그 학생은 30대 초반의 사회인이 되었을 것이다.
올곧은 정신을 가진 청소년이었기에 자신의 몫을 잘 감당하며 당당한 사회인으로 살아가리라 믿는다.
가족관계를 조작하고 서류를 조작하고, 재산을 은닉시켜 가면서까지 기초생활 수급을 받고 있는 자들이 계속 적발되는 보도를 볼 때마다 형편이 나아지자 자신이 받던 혜택을 다른 학생에게 양보한 제자가 생각난다.
그리고 학교급식이 이루어지기 전에 후원자들을 모으고 자비를 보태어 끼니를 거르는 학생들에게 여러 해동안 점심을 먹인 친구인 장세평군의 아름다운 선행에 대해 깊은 감사를 드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