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학을 맞이하며 2학년 3반 급우들에게('89. 8. 27)
한달여간의 방학을 마치고 개학을 맞아 여러분들을 만나보니 반갑습니다.
한달동안 더 많이 자라고 성숙해진 것을 느낍ㄴ다.
그러나, 여러분들이 그저 먹고 자며 시간만 보낸 것은 아닙니다.
하권에 나가서 땀을 흘리고 앉아서 실력을 쌓기 위하여 놀지도 못하고 더 나은 미래를 위해 노력한 친구들도 있습니다.
시간 계획을 작성하고 매일 규칙적으로 공부한 학생들도 있습니다.
취미 활동에 힘쓰거나 공부에 힘쓰는 등 시간을 유용하게 쓴 친구들도 있지만 시간을 낭비하며 무의미하게 보낸 친구들도 있습니다.
그런가 하면 법을 어겨 경찰에게까지 가서 법의 무서움을 체험하고 반성의 시간을 가진 친구도 있었습니다.
여러분들이 방학을 보내고 있는 동안 나라 안팎에서는 격동의 시간이 지나갔습니다.
폴란드에서는 자유노조 세력이 선거엣 승리하여 최초의 비공산 내각이 출범하였고, 헝가리에서는 개혁의 소리가 높아지고 있습니다.
발틱 3국에서는 자치 확대와 소련으로부터 분리를 요구하는 600km의 인간 사슬이 이어졌고 헝가리를 통한 동독인들의 엑스도스의 물결이 넘쳤습니다.
아프칸에서는 내전이 아직 벌어지고 있고 레바논에선ㄴ 인질사태로 전운이 짙게 감돌고 있습니다.
우리나라는 민주화 과정에서 나타나는 진통으로 조용한 날이 없었습니다.
서경원의원의 입북 사태를 둘러싼 공안정국과 정치권의 갈등, 임수경양의 입북 문제와 이의 처리를 놓고 일어나는 갈등이 아직 이어지고 있습니다.
법을 어긴 영웅주의적 행동이 있어서는 안되겠지만 이를 기화로 반대세력을 억압하고 자신들의 과오를 은폐하고 넘어가려 해서는 안될 것입니다.
우리 마음을 더욱 아프게 하는 것은 전교조로 인한 갈등입니다.
옳고그름의 판단은 역사가 해줄 것입니다만 이유는 어떻든 2000명 가까운 선생님들이 타의로 교단을 떠나야 했고 이로 인한 학생들의 반발로 인한 갈등은 오늘도 계속되고 있습니다.
"내일 지구의 종말이 올지라도 나는 오늘 한 그루의 사과나무를 심겠다."라고 스피노자라는 철학자는 말했습니다.
오늘 주변 상황이 아무리 심각하더라도 한 그루의 나무를 가꾸는 마음이 있어야 할 것입니다.
짧은 시간안에개혁을 시도하려는 몸부림과 현체제를 고수하려는 세력 사이의 갈등은 역사발전에 있어서 필연적인 것입니다.
정의감에 넘쳐 개혁을 하려는 몸부림도 필요하겠지만 질서를 지키고 국가를 유지시켜 가야 하는 움직임도 필요한 것입니다.
문제는 이들 모두가 얼마나 자기의 이익을 버리고 진정 국가와 민족을 위하는 것인가입니다.
8.15후의 혼란과 6.25의 와중에서도 그치지 않고 교육이 이루어졌기에 오늘의 번영이 있는 것입니다.
6.29때 거리로 나온 학생들의 외침이 있었기에 이 정도나마 민주화가 이루어졌겠지만 도서관에서 공부하는 학생들과 연구소엣 연구하는 사람들의 끊임없는 노력이 있었기에 우리 사회가 이어져 가는 것입니다.
근로조건을 개선하기 위해 파업을 하고 거리에 나오는 근로자들의 행동이 있기ㅔ 이정도나마 노동조건이 개선되었지만 묵묵히 일하는 근로자들과 농민들이 있었기에 우리나라의 경제가 지탱할 수 있는 것입니다.
어느것이 옳고 그른지를 분별할 수 있는 판단력을 기릅시다.
그리고 공부하는 동안 소나기에 곡식이 떠내려 가는 것을 모르고 책읽기에 몰두했던 선비처럼, 내일 종말이 온다고 해도 오늘 한 그루의 사과나무를 심는 마음으로 내일을 위한 준비를 해 나갑시다.
1989. 8. 27